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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경찰은 어떤 역할을 했나

by moneyinfohub7 2025. 4. 15.

식민지 조선의 경찰은 단순한 치안 기관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 통치의 핵심 수단으로써, 억압과 감시의 도구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다시 들여다본다.

 

 

식민지 시대의 경찰은 어떤 역할을 했나

1. 제국의 명령을 수행한 경찰: 식민통치의 일선 기구

식민지 조선에서의 경찰은 단순한 범죄 대응 기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제국의 명령을 실현하는 손과 발’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병합하면서 가장 먼저 경찰 체계를 정비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즉시 전국에 경찰서와 파출소를 설치했고, 이들은 법적 질서 유지보다는 ‘일제의 통치 권한’을 실행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초기 경찰 조직은 군대와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무력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경찰은 칼을 차고 다녔고, 강제 징용·징병, 세금 징수, 물자 통제, 심지어 교육 감시와 종교 단속까지 전방위적으로 개입했다. 이처럼 조선의 경찰은 법과 행정, 군사력을 아우르는 다기능 억압 장치였으며,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경찰은 또한 민중의 일상까지 깊이 관여했다. 시장에서의 가격 통제, 물자 배급, 언론 검열, 심지어 사적인 모임이나 제례 행위까지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경찰력 강화를 명분으로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보통경찰제를 도입했으나, 실상은 보다 정교한 감시체계로의 전환이었다.


일본은 ‘질서 유지를 위한 필요’라는 명분 아래 경찰을 확대했고, 이들은 주로 일본 출신 관리가 지휘하며 조선인 하급 경찰을 통제했다. 이러한 구조는 위계와 차별을 고착시켰고, 경찰 조직은 조선인 사회 내부로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침투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경찰은 범죄 예방이라는 본래적 기능보다는, 제국 통치의 기계로서 기능했다. 경찰은 총독부의 지시 아래 자유를 억누르고, 민족 운동을 탄압하며,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의 존재는 법을 지키는 자가 아닌, 폭력을 합법화한 자로 기억되고 있다.

2. 감시와 탄압의 구조: 민족운동의 적이 된 경찰

일제강점기 경찰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조선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반일 활동’을 사전에 감시하고 강제로 제압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첩보망을 구축하고, 고등경찰이라는 특수 조직을 운영하며, 반체제 인사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검거했다. 고등경찰은 정치범과 사상범을 전담하며,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정보 조작과 심리전까지 수행하는 사실상의 정치경찰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3·1운동 이후의 탄압이다. 수많은 민간인이 조직하지도 않았던 ‘독립운동 혐의’로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었으며, 시위 주동자는 물론 참여자, 방관자, 심지어 지나가던 행인까지도 ‘질서 교란’이라는 이름 아래 끌려갔다.

이후 일제는 민족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 기독교 청년단체 등 다양한 민간조직을 대상으로 경찰 감시를 강화했다.

 

경찰은 이들의 회합을 은밀히 기록하고, 문서를 압수하며,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등 각종 심리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치안유지법'을 악용해 비판적 지식인과 예술가, 종교인, 언론인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했다. 이 법은 단순히 ‘사상을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검거와 처벌이 가능케 하였고, 이는 경찰 권한의 무소불위를 의미했다.


이러한 경찰의 탄압은 물리적 고문을 동반했다. 이른바 ‘특별고문’이라는 명목 하에 고무곤봉, 물고문, 전기고문 등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자백을 유도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거나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 과정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고, 재판 과정 없이도 처벌이 가능했던 시기였기에, 경찰의 행위는 실질적으로 ‘제도화된 폭력’ 그 자체였다.

 

식민지 경찰의 이 같은 역할은 단순히 억압이 아닌, 체제의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공포 통치’ 전략의 일환이었다. 국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감시 체제 속에서, 경찰은 법보다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경찰은 민족운동의 가장 큰 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독립 이후에도 경찰에 대한 불신은 그 역사적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3. 식민 권력의 유산, 해방 이후까지 이어진 경찰의 그림자

광복 이후 경찰 조직은 형식적으로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더디게 이루어졌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치안 공백을 우려해 일제 시기의 경찰 조직과 인력을 상당 부분 유지했고, 이는 ‘식민지 경찰의 유산’이 독립 국가의 초석으로 이어지는 모순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행정상의 연속성이 아니라, 권력 작동 방식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일제하에서 경찰은 권력의 명령을 무조건 수행하는 존재였고, 이는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이어진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1950년대 전후에는 ‘반공’을 명분으로, 1960~70년대에는 ‘국가안보’와 ‘질서유지’를 이유로 경찰은 고문과 불법 구금, 언론 검열 등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고등경찰의 활동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경찰은 다시금 ‘정치 경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경찰의 자의적 권한 남용이 ‘법의 이름’을 빌어 정당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일제 시기 ‘치안유지법’과 유사한 논리를 반복한 것이며, 경찰이 권력을 감시하기보다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경찰의 물리력 사용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 시위 진압 방식에 대한 논쟁, 경찰 조직의 폐쇄성과 계급 구조에 대한 비판 등은 모두 식민지 시절의 유산과 맞닿아 있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제도만 바꾼 결과, 경찰은 시민으로부터의 신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고,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한 치안 질서 구축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경찰의 진정한 변화는 단순히 물리적 조직 개편이 아니라, 과거의 역할과 책임을 성찰하고, 시민의 편에 서는 공공기관으로 거듭나려는 윤리적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경찰이 법을 무력화시키고 억압의 선봉에 섰던 역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를 기억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억의 정의’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