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 환수는 정의 실현의 상징이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법적 한계, 증거 부족, 정치적 이해관계의 얽힘 속 그 어려움을 짚어본다.
1. 역사적 정의와 법적 절차 사이의 간극
친일파 재산 환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정의와 법의 충돌 지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제 중 하나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은 어려움 속에 이어졌지만, 일제 강점기에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이들은 해방 이후 오히려 부를 지키고, 권력을 유지하며 사회 지도층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현실은 ‘역사의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요구로 이어졌고, 그 중심에 바로 ‘친일파 재산 환수’라는 과제가 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생각만큼 간단히 실현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법적 한계다. 대한민국 헌법과 관련 법령은 사유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재산을 박탈하기 위해선 명확한 법적 근거와 정당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친일행위’의 입증과 그로 인해 얻은 ‘부당이득’의 명확한 연결 고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당시의 문서가 충분하지 않고, 기록 역시 대부분 일본 정부나 개인 소유였기에 그 증거 확보는 매우 어렵다.
또한 환수 대상이 되는 재산 자체가 3세, 4세를 거치며 이미 여러 차례 상속되고 거래된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환수 조치는 복잡한 민사 소송과 대법원까지 가는 장기 소송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일례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일부 환수 사례가 있었으나, 이후 위헌 소송과 행정 소송으로 인해 실행률은 기대보다 낮은 편이다.
결국 정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요구와, 법적 정당성과 형평성을 맞춰야 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친일파 재산 환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역사적으로 명백한 친일행위자라도,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재산은 환수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이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2.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효성 없는 ‘반쪽짜리 법률’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존재한다. 2005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대표적이다. 이 법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나 고위 관직, 경제적 이익을 얻은 친일 인사의 후손이 소유한 재산을 조사해 국가로 귀속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친일 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도 설립되어 활동했으며, 수년간 일부 재산 환수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법이 지닌 구조적 한계와 짧은 존속기한이었다.
우선, 이 법은 소급입법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즉, 과거의 행위를 현재의 법으로 심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헌법적 정당성과 위헌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 법에 따라 환수된 일부 재산은 이후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다시 후손에게 반환되기도 했으며, 법적 공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소송 비용과 행정력이 투입되며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었다.
또한, 조사가 종료된 이후 현재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해산되었고, 새로운 환수 대상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환수 시스템이 정지된 상태다. 과거 자료가 축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할 수단과 조직이 없는 것이다. 이는 제도적 의지는 있었으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이 결여된 반쪽짜리 정책으로 귀결되었다는 비판을 낳는다.
게다가 친일 인사의 후손들은 막대한 자금과 법률적 자문을 통해 환수에 맞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당한 재산권이라는 명분이 힘을 얻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 시민들의 박탈감을 더욱 키우고, 제도에 대한 불신을 유발한다. 결국 환수를 위한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끝까지 가는’ 힘은 없는 셈이다. 이는 국가의 의지 부족과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결합된 결과다.
3. 정치적 부담과 사회적 회피, 정의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
친일파 재산 환수가 어려운 가장 복합적인 이유는 바로 정치적 부담과 사회적 회피다. 이 문제는 단순한 법리 싸움이 아니라, ‘누구의 재산을 건드리는가’라는 민감한 정치적 선택을 수반한다. 특히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주요 권력층으로 편입된 친일 인사들의 후손이 현재 정치·경제·언론 등 주요 기득권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어떤 정부든 친일 재산 환수를 전면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결국 현존하는 기득권과의 충돌을 의미하며, 이는 정치적 리스크로 이어진다. 그 결과 많은 정권이 이 문제에 대해 선언적 차원의 언급만을 하거나, 상징적 수준의 환수 조치에 머무른 채 근본적인 구조 개혁은 회피해 왔다. 이 같은 반복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정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확산시키고, 실망감과 무력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친일파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엇갈린다. 일부는 ‘역사적 사실’로 이를 바라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대적 불가피성’이나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합리화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친일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흐려지고, 환수의 당위성 자체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결국 친일파 재산 환수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가 지닌 권력 구조와 도덕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을 수행하기엔 정치적 용기, 사회적 공감대, 법적 수단 모두가 부족하다. 진정한 정의는 용기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 용기의 부재가 바로 친일파 재산 환수를 어렵게 만드는 본질적인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 개정이나 위원회 설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전체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그 질문에 책임 있게 응답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환수의 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